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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자와 넷플릭스, 영화가 뭐길래? 02 확인
    카테고리 없음 2020. 2. 10.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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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극장협회는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는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옥자를 영화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게 칸 영화제의 공식 입장입니다. 물론 이 정치적 선언에는 영화 이외의 요소(프랑스 극장의 경우 자국 영화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DVD, 비디오 온디맨드, TV,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등 모든 흥행 수입의 일부를 보조금 명목으로 내야 한다고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에 대한 고려가 깔려 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영화관에서 상영하지 않는 (즉, 법을 어긴) 영화란 영화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영화란 무엇인가.<옥자>는 영화관을 뛰쳐나와 인간 최초의 (한국) 영화가 될까?봉준호 감독은 TV로 영화를 보며 자란 첫 세대 감독입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TV시리즈 애니메이션인 미래소년 코난을 보고 영화의 모든 것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비디오 가게 점원이었던 쿠엔틴 타란티노는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를 보면서 영화 ABC를 공부했다. 그런데 그들이 본 것은 무엇인가. 그건 영화 아닌가.  이제 미디어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그 태풍의 눈 가운데에 있는 디지털 플랫폼도 한과인의 날이 진화하면서 다양한 변종을 쏟아내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이 오프라인 매장을 고사하고 유통시장의 맹주가 된 게 엊그제 같은데 이미 모바일 플랫폼에 자리를 내줘 뒷방 노인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사용자는 무자비하고 냉정하다. 조금이라도 새롭고 편하다 싶으면 기성물에 대한 충성을 버리고 새로운 것에 열광합니다. 낡은 구두처럼 버려진 옛 연인 같은 싸이월드와 야후를 보라. 신인류는 배신을 먹는 것과 같은 무서운 실리파 가족들입니다. 이제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는 예측할 수 없는 속도의 세계로 들어섰다. 누워서 일본어나 인면, 새롭게 미디어나 새롭게 플랫폼이 종래의 것을 부수고, 그것을 전복시키면서, 필사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격변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림이 지배하던 시절 사진은 이미의 이단아였고 영화는 사진의 해괴한 사생아였다. 5센트의 오락(니켈 로디언 영화)였던 영화가 현대 예술의 총아로 된 것은 그리 길것이 없다. 현재 영화가 누리고 있는 장르의 위상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통해 기존의 상식과 풍속을 파괴하고 획득한 포획물입니다. 미디어와 미디어 간 생존경쟁이 하이브리드와 퓨전 등 융합이라는 키워드 아래 하과인에 얽매여 변화를 이끌어가는 이 시대에 영화관에서 상영하지 않는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라는 순혈주의란. 웃기는 일이에요. 도대체 영화가 뭐지?작년에 인상 깊게 읽은 글이 있다. 듀그와잉의<코효쥬의 롱 보드의 동영상을 보고>(20일 6년 4월 한겨레). 그 글에서 듀그아잉은 매혹적인 결과물(효주의 롱 보드 동영상)에 매료된 채"최근 몇달 동안 내가 영화관에서 돈을 주게 본 영화 중, 고 효쥬은 씨가 공짜로 올린 이 1분의 영상 만한 가치도 되지 않는 작품은 많다"고 고백합니다."이 지적은 영화의 미래에 대한 의미 심장한(영화 평론가)자백입니다.20일 3년 2월 시네 큐브를 마지막으로 서울 극장가에서 필름 영사기가 없어졌을 때, 사람들은 영화의 죽 소음을 이내 사용하였다. TV가 처소음에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영화감독들이 제작비 절감과 창작의 자유를 위해 필름 대신 캠코더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다시 영화의 무덤에 헌화했다. 그런 영화라는 미디어는 늘 위기의 물결 속에서 살아왔다. 사진의 위협 속에 본질을 상념 한 대화가 자신의 길을 찾은 것처럼 TV의 등장에 대항하고 영화는 70mm대형 화면에 시네마스코프 그리고 3D로 생존을 모색했다. 살아남기 위한 움직임은 새롭게 리뉴얼한 3D와 아이 맥스에 이어죠은묘루의 위기 앞에서 영화는 늘'영화적인 것, 영화만 할 수 있는 것'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존폐 위기가 본질을 강화하는 역설 속에서 오히려 영화는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런 마누라의 권능을 빼고는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다. 반영구적 매체라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한 CD는 아까 역사의 울타리에서 쓸쓸히 퇴장했다가 죽은 줄 알았던 LP가 인공호흡기를 떼고 갑자기 부활했다. 사용자의 취향은 변하기 쉬워 봄 치마보다 가볍게 나풀거린다. 대형 스크린에 불빛을 비추고 어둠 속의 밀폐된 공간에 모여 앉아 두 시간 동안 인질처럼 갇힌 채 관소음증을 발산하던 극장의 시대는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알파고에게) 개인 이세돌이 진 것이지 인류가 진 것은 아니다라는 이세돌 기사의 내용처럼 죽어가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극장이라는 시스템입니다. 기계의 몸을 오쏘 옷우도에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은하 철도 999>의)철처럼 어린이 폰으로 찍었든, 액션 캠으로 찍는 도구가 무엇이든 어디에 다소움 길어도 영화는 영화에서 영화 아니면 안 됩니다. 종이책만 책이 아니라 갑골에 새겨도, 대과인무를 긁어도, 크레마든, 카르타든, 아이 패드든 손톱 크기 디스크에 텍스트를 다소 음아전자기판으로 두드려도 지식과 정보를 다소 음아로 전달하면 그게 책입니다. 형식이 항상 이 내용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영화가 아닌가? 필름을 긁어 상처를 내고 화약품을 부어 이미지를 만든 Stan Brakhage의 <독스타맨>은 영화가 아닌가. 아이의 휴대전화로 촬영한 박찬욱의 파란만장이 극장에 들어가면 영화고, 온라인에서 파일로 돌면 영화가 아니라고 누가 단정할 수 있을까. 극장에서 상영해야 영화라고 누가 감히 정의할 수 있을까.<홀리 모터스>의 오스카는 파편 때문에 나뒹구는 마네킹들 속에 흩어진 온갖 종류의 영화 카메라의 잔해 속에서 영화의 화려했던 영화를 추모합니다. 홀리모터스에 유령처럼 출몰했다가 오스카에게 질문을 한 남자(미셸 피콜리)에게 오스카는 내용을 담습니다. "카메라가 작아졌다고, 너 작아보이지 않는다고, 지금은 가벼워서 누군가의 영화를 찍을 수 있다고, 영화와 현실의 경계가 애매해져서 무"당신, 지고 있다고. 35미리 필름의 시대는 끝났다. 일 6mm카메라가 제 왔을 때도 그랬고, 디지털 카메라가 주류가 된 요즘도 그렇다. 영화 같은 영화의 시대는 지났다.  이 지점에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예언한, 모든 사람들이 나쁘지 않은 캠코더로 영화를 찍어 모든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이 시대에는 영화에 대한 고전적인 기대가 희미해져 버린다. 요즘 인터넷에는 위대한 거장들이 남긴 엄청난 성취에 버금가는 클립이 많다. 과거 할리우드만의 기술을 요즘은 모두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죠(<고효주의 롱보드 동영상>에서 발췌)라는 듀과인의 지적은 적절해 보인다. 갤럭시 8의 5.8인치 화면에 봐도 동양 최대의 아이·맥스 영화관 스크린에서 보아도 영화는 영화이다. 화면 크기가 작다고 영화가 아닌 것은 아니다. 영화는 항상 변화와 확장성을 무기로 끝없이 변신하면서 살아남을 겁니다. 그 형태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극장시스템이 죽었다고 영화가 죽는 것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과민할 때와 같은 확장성을 포기하는 순간 영화는 과거 시대의 유물이 되어 사라진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넷플릭스 시스템은 공룡과 같은 극장 시스템의 빈틈을 뚫은 새로운 형태의 영상물 플랫폼입니다. 그들은 충실한 가입자를 1억명 이상 거느리고 있다. 유튜브에 열광하는 새로운 세대는 집에서 모바일로 편안한 넷플릭스 상영 방식에 호의적입니다. 이들에게 (스크린) 크기 사건은 편의성보다 중요한 절대적 조건이 아니다. <왕좌의 게임>의 경우에서 보듯, 규모나 물량 등의 생산면에서, 그리고 그 생산물을 즐기는 관객들의 양적 팽창 면에서 이미 '미드'가 영화의 권좌를 빼앗긴 지 오래다. 마틴 스코시즈 같은 거장도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를 캐스팅해 아이리시맨이라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를 촬영하기로 했다고 한다. <옥자>의 경우도 그렇지만 막대한 자본력, 창작자의 완전한 자유 보장, 안정적인 배급망이라는 달콤한 먹이를 앞세운 넷플릭스의 영상물 시장 정복은 새로운 플랫폼과 방식이 그 세계의 구조와 본질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명확한 근거입니다.    물론 여전히 극장 스크린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꼭 극장 스크린에서 상영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형 디스플레이 과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DVD 와인 VOD 서비스, 혹시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로 영화를 보고 과인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면서 스마트폰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것도 어떤 영화를 즐기는 허그인 방법입니다.  우리는 당분간 이 다양한 감상방법의 불편한 동거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벰 달리)<코효쥬의 롱 보드의 동영상을 보고>, 듀그와잉: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8&aid=00023일 5972


    2)롱 보드 여신 코효쥬 영상 모기 소리:https://www.youtube.com/watch?v=mIWTvlLxx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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